KAISER Idell의 블랙 씨저 램프입니다.

Bauhaus시대의 대표적인 램프 디자인이죠~

 Christian Dell이 제안한 Idea를 합성해서

 램프 이름을 Kaiser Idell이라고 지었다고 합니다.

 

카이저 램프는 유명세만큼 콜렉터분들께

인정받는 제품이에요..

단품입고 되었습니다.

쉐이드 지름 약 15.5cm,  총 길이 약 85cm






현대기술과 단순미의 완벽한 조화

크리스티안 델의 테이블 램프 ‘카이저 이델’




내가 독일에서 산업디자인을 배우던 1989년에서 1995년까지의 긴 시간 동안 나는 크리스티안 델의 카이저 램프를 보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내 눈에는 항상 보였겠지만, 관심도 없고 알지도 못했기에 머리 속에서 기억하지 못하고 스쳐 지나가기만 했을 것이다.

당시까지 카이저 램프는 너무나 일상적인 물건이어서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고 일상 속에 묻혀 있었다. 마치 스위스의 사회학자 부르크하르트(L Burckhardt)가 “디자인은 보이지 않는다”라고 말한 것처럼 말이다.

1996년부터 한국에 돌아와 학교에 있으면서 테이블 램프가 필요해서 단순하고 견고한 전등을 구하러 다녔다. 그러나 요란한 장식에 금방 망가질 것만 같으면서도 턱없이 비싼 제품밖에는 찾을 수가 없었다. 당시 한국에 혜성처럼(?) 나타난 ‘디자인 붐’ 덕택에 나는 일자리를 쉽게 얻을 수 있었지만, 모든 테이블 램프가 지나치게 디자인돼(?) 내가 살 만한 것들은 모두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1998년부터 나는 다시 독일 벼룩시장에 몇 번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한 아주머니에게서 내가 바라던 단순하고 솔직한 모양의 전등을 찾게 됐다. 그제서야 나는 그 전등이 예전의 미술학교에 널려 있어서 항시 보아왔던 것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전등의 몇 가지 다른 유형들을 차례로 구하면서 크리스티안 델이 디자인하고 카이저(Gebr. Kaiser & Co.)에서 193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생산했던 것임을 뒤늦게 알았다.

은세공가인 크리스티안 델은 바우하우스 바이마에서 1926년까지 금속공방 마이스터로 일했고, 그 후 1933년까지 프랑크푸르트 미술학교의 금속공방을 지도했다. 그 곳에서 조명기 개발을 시작한 그는 1933~34년에 카이저 조명기 회사를 위해 카이저 이델(Kaiser Idell)이라는 다양한 탁상용 조명기를 디자인했다. 그가 개발한 조명기들은 쓰임새에 맞도록 기능에 충실하고 대량생산에 적합하게 만들어졌다. 철판 성형 후 백색 또는 흑색으로 도장하여 완성하도록 디자인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생산기술이 갖는 아름다움을 솔직히 보여줌으로써 현대 기술과 미의 완벽한 조화를 이뤄냈다.

카이저 조명기는 전기조명기가 일반에게 확산되던 때에 맞춰 저가로 대량생산되며 사무실과 작업장에서부터 일반 가정에까지 널리 퍼져나갔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 조명기와 함께 살아가면서 새롭게 변화된 후기산업사회, 즉 소비사회에서의 달라진 미적 규범을 체험하였다.

카이저 이델 램프는 20세기 초 바우하우스를 비롯한 아방가르드 미술운동가들이 꿈꿨던 새로운 대량생산 미술을 실현시킨 몇 안 되는 대표적 성공사례 중 하나다. 그러나 이 같은 성공에도 불구하고 카이저 이델 램프는 서구의 현대 디자인사에서 브란트(M Brandt)가 바우하우스의 금속공방에서 개발한 칸뎀(Fa. Kandem) 램프의 그늘에 가려져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러한 현상은 아마도 서구의 주류 디자인사관들이 기존의 미술사관에 편중되어 있거나, 시대의 조류에 편승한 마케팅 관점에 치우쳐 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어떤 영문에서인지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갑자기 미국에서 카이저 램프 사재기 붐이 불었다. 그에 따라 널리 퍼져있던 카이저 램프마저도 벼룩시장에서 점차 소멸되어 가고, 수집상들 사이에서도 매매가격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게 되었다.

이병종 연세대 산업디자인학과 교수